여자라면 힐러리처럼
부제: 꿈을 품은 여자가 세상의 중셈에 우뚝 서는 법

이지성 지음

출판사: 다산북스





작년에 책방가서 샀던 책인데 그냥 눈에 띄길래 다시 집었다. 난 일단 책을 사면, 사정없이 밑줄긋고 접고 별표하고 책을 더럽히면서 보는 편이라, '얼마나 더럽혀졌나'가 그 부분이 '얼마나 인상깊었나'를 알려주는 지표이기도 하다. 사실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나, 지금 다시 읽을 때나 변함이 없는 것은 제 4장 에서 읽는 속도가 느려지고 밑줄 치는 빈도가 증가한다는 점이다. 제 4장은 독서법과 글쓰기에 관한 내용으로 채워져 있는데, 이 책의 핵심은 존 스튜어트 밀 식 독서를 설명한 부분이라고 생각한다. 

미국에서 제일 공부 못하고 사고치는 학생들이 주로 입학했던 학교였던 시카고 대학에, 1929년 로버트 허친스 라는 사람이 총장으로 부임했다. 그는 존 스튜어트 밀 식 독서법에 정통한 사람이었고, 시카고 대학을 세계 명문 대학으로 키우겠다는 야심을 품고 시카고 플랜은 도입했다. 고전 100권을 읽지 않은 학생은 졸업을 못하게 했으니, 당시 삼류라던 시카고 대학 학생들도 철학 고전을 읽지 않을 수 없었다. 시카고 플랜 이후 1929년 부터 2000년까지 이 대학 출신들이 받은 노벨상이 73개나 된다고 한다.

공부랑 담쌓던 애들도 고전 읽어서 변화를 이루었는데 나라고 그런 변화 못하란 법 없지 않은가. 그리고 왜 학생들에게 고전을 읽게 했는지 생각해 보면 노벨상 수상자가 그렇게 갑자기 많이 나온 것이 어느정도 이해가 된다. 인간이 만들어 놓은 것은 어느것이든 시간의 흐름에 따라 노화하고 퇴색하게 되어있다. 물과 바람이 작용하면 부실한 모래부분을 깎아버리는데, 오랜 시간이 지나면 세월을 견딘 아주 단단한 부분만 남는다. 고전은 세월의 풍파를 견딘 단단한 부분이다. 시간이라는 물과 바람이 깍으려고 아무리 시도 해도, 그 가치가 깎이지 않고 남은 인류 유산의 골격인 것이다.

신간, 베스트 셀러라는 책들은 지금이야 서점에서 잘 팔리니까 베스트 셀러지, 거친 세월의 힘에 얼마나 견디는지 아직 입증이 안됬다. 레오나르도 다빈치, 아이작 뉴턴, 하인리히 하이네, 벤자민 플렝클린 등 시대의 천재들이 플라톤의 저서들을 탐독했다. 천재라서 책을 끼고 살았는지, 책을 끼고 살았더니 천재가 되었는지는 모르겠지만 이 어마어마한 지성들이 했던 고전읽기를 따라해 보고싶은 욕심이 든다. 만약에 존 스튜어트 밀 식 독서법으로 고전을 10년 동안 읽었는데도 나에게 괄목할만한 변화가 없다면! 그 때 나는 「고전읽기는 시간낭비다」라는 제목의 책을 쓸거다.

지금 부터라도 고전읽기를 시작할 거다. 지금이 아니면 나중에 언젠가는 후회하게 될 것 같기 때문이다. 난 지금 이게 하고싶다. 해야한다..... 힐러리가 가진 여러 베울점 중 하나는 그녀가 갖고싶다. 이루고싶다는 내면의 목소리에 집중했다는 것이다. 다른 사람의 눈치를 보고싶은 마음, 통념과 맞서싸우는 것에 대한 귀찮음, 주위 시선에 어떻게 반응해야할 지에 대한 당혹감 같은 것은 과감하게 정리하고, 당장 원하는 것을 한다면 무궁무진한 시도와 도전을 하게 될 것이다. 



여기있는 책 다읽을거다.

<동양고전>
논어
대학
장자
맹자
주역
사기열전 (사마천)
중용
삼국지 나관중
우파니샤드
기찬잘리 (타고르)

<서양고전>
고백록 (아우구스티누스)
순수이성비판 (칸트)
국가 (플라톤)
헴릿 (셰익스피어)
팡세 (파스칼)
성경
신곡 (단테)
니코마코스윤리학 (아리스토텔레스)
방법서설 (데카르트)
죄와 벌 (도스토예프스키)
파우스트 (괴테)
사회계약론 (루소)
역사철학 (헤겔)
짜라두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 (니체)
존재와 시간 (하이데거)
군주론 (마키아벨리)
일리아드 (호메로스)
자본론 (마르크스)
꿈의 해석 (프로이트)
부활 (톨스토이)
수상록 (몽테뉴)
실락원 (밀턴)
유토피아 (모어)
자유론 (밀)
죽음에 이르는 병 (키에르케고르)
돈키호테 (세르반데스)
일차원적 인간 (마르쿠제)
국부론 (아담스미스)
변신 (오비디우스)
성과 속 (엘리아데)
역사의 연구 (토인비)
인간의 현상 (떼이야르드 샤르뎅)
외디푸스왕 (소포클레스)
광기의 역사 (미셀푸코)
과정과 실재 (화이트헤드)


고전만 읽는것도 편식이니까 과학서랑 사회과학서 추가~

<자연과학>
게놈 matt ridley
과학혁명의 구조
나는 고백한다, 현대의학을
내안의 유인원
링크
면역혁명
몸과 우주
부분과 전체
상대성이론
새로운 과학과 문명의 전환
생각의 탄생
생명이란 무엇인가? 마음과 물질
세포의반란
시간과 공간에 관하여
식물의 정신세계
엔트로피
이기적 유전자
이중나선
인간은 왜 늙는가
종의기원
중국의 과학과 문명
카오스와 코스모스
코스모스
통섭
아이콘 jeffrey young & william simon

<사회과학>
국부론
다산선생지식경영법
당신들의 대한민국
도쿄대생은 바보가 되었는가?
로마인 이야기
문명의충돌
문화의 수수께끼
민주주의와 교육
부의미래
실크로드 문명기행
역사
오래된 미래
왜 세계의 절반은 굶주리는가
유토피아
죽은 경제학자의 살아있는 아이디어
지도자의 조건
총, 균, 쇠
한국 현대사 60년
행동 경제학

<인문학>
우주의 구조
감옥으로부터의 사색
다산문선
무의식의 분석
미학오딧세이
생각의 지도
설국
세계종교 둘러보기
시골의사의 아름다운 동행
안정효의 글쓰기 만보
철학자와 굴뚝 청소부
간디 자서전
자연과 언어에 관하여
스키너의 심리상자 열기
카라마조프의 형제들
렉서스와 올리브나무
변신
호밀밭의 파수꾼
이방인


통섭

감각력 & Variety 2009/06/17 01:46





Consilience 통섭
The Unity of Knowledge 지식의 대통합
Edward Wilson 에드워드 윌슨

최재천 장대익 옮김

사이언스북스





아주 오래 전. 아리스토텔레스니 데모크리토스니... 공부가 취미라 수학자이자 철학자고 의학자고 음악가고 혼자 다해먹는 다 하는 분들이 살았던 그 시절. 인간은 세상에 대한 모든 것에 대한 원리와 이유를 알고 싶어 했다. 알면 알수록 앞으로 알아야 할 것 들이 더 많다는 것을 깨닫고, 기하급수적으로 축적되는 지식의 양을, 한 사람이 다 감당할 수 없는 지경에 이르렀다. 학문은 그 성격과 실용성에 의해 분화되기 시작했으며 여태껏 엄청난 수의 학과가 생기게 되었다. '통섭'을 읽으면서 계속 들었던 생각은, 지나치게 분화된 학문의 세계를 하나로 합칠 수 있을지도 모른다는 것이었다. 원래 하나였던 우주가 한 점에서 팽창하는 빅뱅이론처럼, 혹자들이 말하는 빅크런치가 지식의 대 통합으로 일어날 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통섭은 어쩌면 이 시대의 대세일지도 모르겠다. 철학과 뇌 과학을 연결하는 인지신경과학이나 생리심리학, 지리학, 공학, 생태학을 아우르는 환경공학, 사회과학과 유전학을 연결하는 진화심리학 등, 이들은 단순히 두 가지 학문을 연결하는 것이 아니라 세가지, 네 가지, 혹은 더 많은 가짓수의 학문을 연결하는 그물을 이루고 있다. 학제 간 연구가 활발히 진행되고 있는 것 뿐만 아니라, 근 음악에서의 크로스오버도 통섭의 모양을 따르고 있다고 생각한다. 너도나도 이것저것 하도 섞어 대서 요즘에는 아예 장르 구분이 불가능해졌다. 미술도 분야가 정말 많아져서 시각, 청각, 후각, 촉각을 모두 이용한 설치미술이나, 퍼포먼스 등 어디까지가 미술인지 경계가 모호해졌다.

이런 저런 생각을 하면서 읽다 보면 지식의 대 통합을 주장하는 이 이야기에 어느 정도 수긍이 간다.  특히 작자가 포스트 모더니즘에 대한 강한 반감을 갖는데 동의한다. 객관성에 대한 반대로 시작된 포스트 모더니즘은 개성, 자율서 다양성을 중시하고 절대이념을 거부했다. 그러나 '절대이념을 거부'한다는 '또 다른 이념'을 낳았다. 대표적인 예로 문화다원주의가 있는데, 모든 문화의 가치가 동등하다면 문화를 굳이 힘들여 발전시킬 이유도 없다. 분석하고 쪼개는 것을 무기로 하는 환원주의의 최 극단은 다양성을 인정한다는 이유로 자유를 범람시키는 오류를 낳았다. 물론 다양성을 인정하는 것은 중요하지만, 그 수많은 개개인의 의견 모두가 옳다고는 할 수 없으며, 어찌됐든 더 나은 방향이 있기 마련이다.

이럿 듯 통섭에 대한 아이디어나 필요성에 대하서는 인정 하지만, 의문을 제기 하고 싶은 내용도 있다. 첫째, 단어선택에 관한 것이다. 저자는 과학계끼리 학제간 연구에 대해서 통섭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고 있고, 과학계와 인문학사이의 학제간 연구에 대해서도 통섭이라는 단어를 사용해, 미묘한 차이를 다 담지 못했다. 심리학에서의 학제간 연구는 과학계에서의 학제간 연구와는 성격이 다르다. 과학에서의 학제간 연구는 융합을 통해 진정 경계가 허물어지는 반면, 인문학과 과학사이의 융합은 경계가 허물어진다고 보기 어렵다. 예를 들어 최근 NeroEducation, NeroMarketing 등 사회 현상과 뇌신경과학을 연결하고자 하는 연구는 엄밀히 말해서 뇌의 활성화를 분석도구 중의 하나로 이용하는 성격이 강하므로, 통섭이라는 말을 여기서도 쓸 수 있을 지 의문이다.

둘째, 통섭의 방향이 마냥 무작위는 아니라는 거다. 부대 찌게 만들 때 라면이나 소시지를 넣는 것은 잘 어울리지만, 요구르트나 카모마일 티 넣으면 진짜 이상해지는 것처럼, 서로 모일 수 있는 학문이 있고 모이면 진짜 이상해지는 경우도 있다. 저자는 모든 것이 모이는 중심원리에 대한 환상을 갖고 있다. 계속해서 학문탐구의 궁극적인 목적이 그 중심원리를 찾는 일이라고 하는데 그 중심 원리가 종교와 관련된 것이라면 모를까, 학문탐구의 목적이 통섭이라 하기에는 지나친 비약이며 자칫 “통섭주의”로 흐를 수 있다. (책 뒷부분으로 갈수록 주장이 약해지는 느낌을 받았다...... 뒷부분에는 예술, 종교, 도덕 등의 내용. 통섭주의는 방금 지어낸 말. 항상 “무슨무슨주의”는 지나치게 빠져서 그 틀에 껴 맞추려는 것을 말함.) 또한 학문이 분화된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른, 우리가 갖고 있는 자연스러운 역사이다. 시간을 되돌리면 쪼개졌던 것이 한 점으로 모일 수 있겠으나, 타당한 이유로 나누어진 것을 굳이 한대 모아 하나로 만들려 하는 것은 주의 할 필요가 있다.

셋째, 기능이 다른 영역을 같은 방법으로 묶으려 하는 것은 잘못이다. 과학의 성격이 분석하고 환원하는 것에 있다면, 예술은 감각, 기억, 감정, 그 외 여러 가지가 복합된 경험이다. 나는 잠깐 동안 예술도 진화의 산물이 아닐까 생각 했다. 예술이 일으키는 감정은 비교적 강렬하며, 사람은 특별하게 좋은 감정을 갖는 것을 잘 기억한다. 그렇다면 예술은 인간이 대상을 기억하게 하는데 가장 효율적인 방법인 셈이다. 빛을 감지하기 위해 시 지각을, 공기의 진동을 감지하기 위해 청각을, 화학물질을 감지하기 위해 후각을... 동물은 필요한 감각기관만 발달 시키듯이, 예술을 감지하고 감정을 불러일으키는 기능도 효율적으로 대상을 기억하기 위한 진화의 산물이 아닌가 생각했다. 근데, 그래서???? 그런 건 예술이 생긴 이유는 설명해도 작품을 감상할 때의 순간 멍해지는 충격을 설명해주진 않는다. 어느 영역에서는 그것을 탐구하기에 분석의 틀을 사용하는 것이 자연스러우나, 어떤 영역에서는 통합하는 기능에서 바라보는 것이 자연스러울 수도 있다.

(요) 학문의 통섭이라는 개념을 소개하고 그 가능성에 대한 이야기는 패러다임의 전환을 연상시킬 만큼 획기적이다. 10여 년 전에 이런 책이 나왔는데, 한글 번역본이 출간된 것은 2006년이라는 사실에, 갑자기 영어공부 열심히 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영어를 잘해두면 그렇지 않을 때보다 앞선 정보를 얻을 수 있겠다는 생각 말이다. 통찰과 지식을 묶어 통합을 이루려는 노력은 인간의 알고자 하는 욕구를 충족시키고 풍요롭게 하지만 이것이 지나쳐 통섭주의로 변색되는 것만은 경계한다.


무섭다

아무말이나... 2009/06/03 00:00

분노.
그냥 너무 화가난다.
요즘 한국에서 일어나는 일들을 보고있으면...
한국에서 살고 있는게 불안하고 무섭다.

블로그에 쓰고싶은 말이 많은데...
"내 블로그 검색해서.... 나 잡아가면 어떡하지?"
이런 생각이 들어서 뭐라고 하고싶은 말도 못쓰겠다...

 아무리 보수 진영이 판을 쳐도...
되풀이하지 말아야 할 과거로 뒷걸음질 치는 것은 이번이 처음인 듯 하다.
이런 말 한다고 잡아가면 어떡하지..... 걱정된다.
마음이 너무 아프다.
무섭다.